북 리뷰_서미싯 몸_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pence)_청련향
🌙🎨🪙
달과 6펜스
(The Moon and Sixpence)
(p. 231)
건달은, 예술가도 그렇고 아마 신사도 그렇겠지만, 어느 계급에도 속하지 않는다.
서미싯 몸의 '달과 6펜스'는 폴 고갱을 소재로 창작된 소설로 화가를 바라보는 문학인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이름으로 서술되는 관찰 대상은 대단한 신비로움, 원시적인 본능과 탐구정신을 지닌 인물입니다. 인습과 철저히 거리를 두는 그는 한갓 난폭한 짐승과 같으나 그의 주변인들은 그를 험담하거나 괴롭히기는커녕 외경심을 지니곤 합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를 아끼는 것은 아니지만요. 찰스가 내린 삶의 결단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충분히 가질 수 있는 내면의 욕구와 닿아있습니다. 서술자의 태도를 보면 찰스를 향한 왜곡된 존경심, 그리고 그와 달리 자신은 문명에 머무르려는 반발심을 동시에 보이는데요. 이 점이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이제 구체적인 구절을 살펴보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겠습니다 😉
ฅʕ•̫͡•ʔฅ
🌙 달: 원시적(原始的)인 욕망(欲望)
(p. 69)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 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문명에 적응하고자 삶의 욕망을 숨겨왔던 Mr. 스트릭랜드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자신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집중하는 그 시간은, 세상과 잠시 동떨어져 나만의 세상에 몰두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몰두의 결과로 '작품'이라 불리는 물질이 남습니다. 이 과정은 헛된 행동으로 보이기에 충분합니다. 도대체 왜 그리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기도 하더군요. 미지의 영역에서 은밀하게 결정된 소명 탓인지 모르겠으나, 그림을 그리는 것을 업으로 삼으신 분들을 보면 단단한 결심과 비장함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마치 훌륭한 섬을 버리고 떠나지 못하는 여행객처럼, 끝내 그 섬의 사람이 되고 마는 찰스처럼. 예술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사람의 모습은 타자로 하여금 복잡한 감정을 일으킵니다. 그리움과 신비로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죠.
(p. 111)
나도 때로 생각해 보았소.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외로운 섬,
그 섬의 아무도 모르는 골짜기에서 신비스러운 나무들에 둘러싸여 조용히 살아볼 수 없을까 하고.
거기에서는 내가 바라던 것을 찾을 수가 있을 것만 같아서
'고독'은 집중을 위한 기반이며, 믿기 어려우실지 모르나 쾌활한 기분으로 겪을 수 있는 경험입니다. 스스로 고독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을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찰스'의 경우 오롯이 집중하는 상태를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과 웃으며 어울리는 것은 즐겁고 유쾌한 일이지만, 자신의 내면의 흐름을 읽으며 심상을 더듬어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삶의 경험을 넓히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은 사람들과 함께 하여도 좋으나, 결국 작업은 홀로 고독하게 집중하여야 합니다. 찰스는 이 점을 명확히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외부와 단절된 삶을 선택하였고, 파리보다 더욱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장소로 '외로운 섬'을 언급합니다. 영적인 성취를 위한 준비와 내딛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죠.
(p. 196)
그래도 당신은 날 진짜로 미워하지는 못할걸.
내게서 가끔은 좋은 걸 배울 수 있는 한은 말이야
예술가의 활동이 보답을 받는 순간은 과연 언제일까요? 세상의 인정을 받고 그림이 팔리는 것이 보답의 전부일까요? 어쩌면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이 탄생되는 그 순간이 보답이 아닐는지요. 문명을 이루어 모여 살아가는 사람은 타인과의 교류를 포기할 수 없으며, 이는 곧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삶이 불가능함을 암시합니다. 예술가 역시 이 세상에 생명을 얻어 태어난 이상 사람과 관련을 맺기 마련이고요. 생명은 암과 수가 만나 태어납니다. 예술가 역시 생명체인지라 이들을 낳은 부모가 있습니다. 그러나 존재 사실과 별개로 사랑받는 것은 늘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미움받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단언할 수 없습니다. 찰스에게 세속적인 윤리를 무시한 것에 대한 결과가 두렵지 않으냐고 나무라는 '서술자'의 대답에 찰스는 평정심을 잃지 않습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결국 '서술자'를 포함한 사람들은 자신을 진짜로 미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기 때문이죠.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온 신뢰를 읽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 6펜스: 세속적(世俗的)인 적응(適應)
(p. 111)
부인과 애들에 대해선 한 마디도 묻지 않으셨어요. 조금도 생각나지 않습니까?
(p. 199)
이건 단순히 호기심으로 알고 싶은 건데,
당신은 블란치 스트로브의 죽음에 대해 눈곱만큼이라도 가책 같은 것을 느낀 적이 있나요?
(p. 206)
당신은 살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일을 남에게 의지하고 있어요.
혼자 힘으로, 홀로 살아가려고 하는 건 가당치 않은 일이에요.
(중략)
당신은 지금 불가능한 일을 하려는 거예요.
머잖아 당신 안에 있는 인간적인 요소가 함께 얽혀 사는 삶을 갈망하게 될 거란 말입니다
'서술자'는 찰스가 내면에서 겪었을지도 모르는 갈등상황을 표면에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서 서사의 확장을 돕는데요. 더 나아가 예술가의 길을 가고자 하였으나 도중에 절망하였던 사람들의 뜻을 꺾었던, 세속의 논리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행운인지 불운인지 찰스 스트릭랜드는 스트로브의 희생적 이리만큼 강렬한 지지와 도움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는 데, 그를 향한 보답의 방식이 세상의 논리와 완전히 다릅니다. 찰스는 스트로브의 아내가 자살하는 데 원인을 부여하고, 또 그녀를 모델로 그린 누드화를 선물로 줍니다. 이러한 점에 따라 찰스가 윤리적인 기준을 뛰어넘어 예술에 철저히 탐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술(藝術)의 목적(目的)
(p. 197)
작가는 논리를 갖춘 철저한 악한을 창조해 놓고 그 악한에게 매혹당한다.
(p. 276)
스트릭랜드를 사로잡은 열정은 미를 창조하려는 열정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마음이 한시도 평안하지 않았지요.
(중략)
세상엔 진리를 얻으려는 욕망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들이 있잖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진리를 갈구하는 나머지 자기가 선 세계의 기반마저 부숴버리려고 해요.
스트릭랜드가 그런 사람이었지요.
(p. 296)
그걸 보면 공간의 무한성과 시간의 영원성이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중략)
마치 거기에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영원히 잡히지 않는, 무슨 영혼이나 신비가 숨어있는 것처럼요.
색채들은 눈에 익은 색채들이었습니다.
(중략)
그런데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딘지 거룩한 데가 있었어요. 벌거벗은 원시의 본능 상태에 있는 그런 인간의 모습을 보니 두려움이 느껴졌습니다. 거기에 우리 자신의 모습이 있었으니까요
'찰스 스트릭랜드'를 서술하는 '나'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소설에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달과 6펜스'의 주요 관심 대상은 찰스입니다. 고집과 열정으로 부지런하고 꿋꿋이 작업하던 그는 마침내 훌륭한 작품을 남기게 됩니다. 노력의 결실을 얻은 것이지요. 그렇지만 건강은 모조리 잃은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과로와 물감이 지닌 독소가 신체에 축적되면서 병을 얻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자신을 불살라 곁에 온기를 주는 장작처럼 예술작품을 향한 희생정신이 보이죠. 한편으로 측은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도대체 예술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헌신적인지! 정확히 짚어보면, 찰스는 예술작품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 말고는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일반인들의 삶의 중심이 자신의 건강과 안전이라면, 그의 경우는 더 나은 예술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다양한 가치관을 표면화하고 인정하는 건,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고 인류가 지닌 다양성을 함양합니다. 이러한 점이 앞으로 우리의 생존법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오늘은 예술가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매력적인 소설, 달과 6펜스를 읽은 감상을 공유하였습니다.
다음에도 만나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상 청련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