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64괘_림(臨) (19)_청련향
림(臨)
👩🏫 통변
주역 64괘 가운데 림 괘는 위로 곤괘, 아래로 태괘가 자리한 모습입니다. 곤괘는 가장 강력한 포용력을 가진 괘로 적응력이 최고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변화가 가장 많은 괘이기도 합니다. 반면 태괘는 곤괘와 구분되는 견고함이 있습니다. 연못의 물은 메마르지 않고 그 상태가 유지되는 고요함이 있습니다. 물론 그 안에 다양한 어종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점에서 '음'으로서 모습을 가지지만 흙의 변화무쌍함을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림 괘는 곤괘의 수용성이 태괘에게 하강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양은 음을 끌어당기고, 양은 아래의 태괘에 1 위와 2 위에 있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어린 딸을 보살피려 다가가는 모습을 떠오르게 하네요.
1 위, 4 위, 6 위는 제 자리에 효가 자리하였고, 2 위, 3 위, 5 위는 제 자리에 효가 자리하고 있지 않습니다. 2 위는 어린 여자 아이의 불필요한 고집을 닮았습니다. 조직에 적응하는 사람을 기르는 목적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상괘의 굳건함에 응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관점은 다양하게 바라볼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먼저 전자는 연장자에 대한 접근이 아니라 사람의 인품에 대한 접근으로 보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품은 길러지는 것이지만, 모든 노인이 현명하고 지혜로움을 반드시 가지게 되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반면 후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핵심은 나이의 듦과 젊음이 아니라 인품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인품은 물론 길러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품은 저절로 길러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점에서 노력과 열정, 추구가 요구되는 데요. 인품을 기르려는 사람은 주변의 사람의 언행을 관찰하기 마련입니다. 이때 우리가 본받아야 할 대상을 상괘의 중심, 5 위에 양효가 있음을 알아차린다면 하괘는 그에 응하는 음이어야 마땅하다는 논리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 림 괘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림 괘의 경우는 5 위에 음효가 자리하고, 2 위에 양효가 있어 합을 이룹니다. 막내딸의 굳센 모습은 자애로운 어머니의 사랑을 이끕니다. 합이니 단단하게 소통합니다. 그러나 2 위는 음효가 되어야 합니다. 딸은 여성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양이 음을 끌어당기는 현상은 일시적이며, 막내딸은 어머니의 '음'적인 기질을 닮아가려는 방향성 역시 잠재되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겠습니다. 부드러운 리더와 자기 주관이 확고한 아랫사람의 관계에서 아랫사람은 리더의 소프트 리더십을 지향하게 될 것이며, 리더는 아랫사람의 강한 주관을 밉게 보지 않으니 부드러움이 있는 괘이며, 긍정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따뜻한 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 •̀ ω •́ )✧
🙃 궁금 포인트
: 풀이 가운데 咸臨 吉無不利 未順命也, '모두 임하니 길하고 불리함이 없으며 아직 명을 따르지 않음이다'라는 문장을 무슨 의미로 볼 수 있을까?
위의 풀이를 깊게 읽기에 앞서 '명(命)'이란 무엇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관련지어 말씀드리고 싶은 구절을 중용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즉 하늘이 명하는 것을 곧 성(性)이라 이른다는 말인데요. 이때 명(命)은 천(天), 하늘이라는 어휘와 연결되어 언급되고 있습니다. 하늘이라는 것은 우리가 순응해야 할 대상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 광활한 우주에서 생명체라는 것은 흝어지지 않은 채로 그 삶을 유지하는 따뜻한 물질입니다. 음은 우주이고, 우리 생물들은 양인 셈인데요. 하늘을 지구에서 지면을 제외한 그 외의 부분으로 볼 경우, 지구를 포용하고 있는 우주로부터 지구를 향한 것입니다. 지구의 외부로 부터 다가오는 거대한 운석을 우리는 단지 대처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직접 우주의 질서를 변화하게 만든다거나, 태양계의 항성을 교체할 수는 없기 때문이죠. 즉, 명(命)이라는 건 생명체의 언행을 조절하는 기능을 하는 모든 작용력입니다. 주역의 림 괘에서 2 위인 음의 자리에 양효가 자리하고 있어서 '아직 명을 따르지 않음'이라 함은 순응하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임한다는 것은 명에서 요구하는 행으로 이어지기 전의 모습인 셈이죠. '지금'이 아니라 '아직'이라는 것인데요. 그러나 강력한 고집은 아닙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완강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5 위의 음효와 합을 이루기 때문이고, 합을 이루니 결속력이 강해지는 것이기에 5 위와 뜻을 함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2 위의 양효는 곤괘의 보살핌 속에서 자신을 탐구하고 발달하는 과정을 겪으니 길합니다. 시의적절하게 배워야 할 것을 배우는 데 그 내용이 '양'이 아니라 '음'입니다. 유연한 처세술, 상황대처능력, 겸손한 태도와 언행이 되겠습니다.
🙃 흥미 포인트
: 풀이 가운데 甘臨 位不當也 旣憂之 咎不長也, '달게 임하니 위치가 마땅하지 않으나 이미 우려하고 있으니 허물이 오래가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굳건함이 부족한 3 위의 특성에 따라 약간의 곤란함이 예상됩니다. 그렇지만 양이 음보다 소중하다는 가치판단에 따라 양이라는 대상은 음보다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마치 죽음보다 생명을 더욱 귀하게 여기는 것처럼요. 달게 임한다는 건 고집을 부리거나 저항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음의 면을 보여주는 것인데요. 순응은 음의 다양한 모습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미 우려하고 있다 함은 3 위의 지향점이 음에서 양이라는 것입니다. 이때의 허물은 양의 부족함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우려는 단단한 마음이 아니므로 '양'과는 거리가 있으나 확실한 계기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허물이 오래가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는 인물은 더 나은 자신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이 세상에 노력으로 일굴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을 까요. 주체적인 태도가 우리에게 주는 보답은 얼마나 풍성할까요. 본디 세상의 변화가 야속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자신의 힘으로 일군 어떠한 대상이 스러져가는 것을 바라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고통이 생기는 것이겠고요. 이때 우리는 적어도 그때 그 마음가짐, 그때의 자신을 노력하게 만들었던 소중하고 눈에 보이지 않던 무엇을 간직하고 나아가야겠습니다. 불필요한 고집으로 시대를 거스르자고 오도(誤導)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자신의 삶에 자리한 요추(要樞)를 간직하며 자존감을 잃지 말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은 이제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들 말합니다. 이러한 시기일수록 저는 깊고 맑은 사람이 되기에 좋은 시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유연함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는 림 괘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만나요.

이상 청련향이었습니다.